
'광화문 변호사 박인준의 통찰'은 박인준 법률사무소 우영 대표변호사가 풍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법과 사람, 그리고 사회 이슈에 대한 명쾌한 분석을 비즈엔터 독자 여러분과 나누는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민사소송은 감정의 싸움이 아니다. 권리를 정당하게 주장하기 위한 법의 언어로 풀어내는 절차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소장'이다. 소장은 단순히 억울함을 표현하는 문서가 아니다. 자신의 법적 권리를 이성적으로, 조리 있게 주장하는 핵심 도구다.
◆ 소송의 시작 : 내용증명과 소장
최근 한 의뢰인이 이렇게 물었다. "1억 원을 빌려줬는데, 아직 못 받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면, 상대를 붙잡고 따지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방식은 폭행죄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내용증명, 궁극적으로는 소송을 위한 소장이다.
소장은 민사소송을 여는 공식적인 첫 문서다. 문서 상단에는 "소장"이라는 제목이 들어가야 하며, 그 아래 원고와 피고의 이름과 주소를 정확히 기재한다. 이후에는 본격적인 청구 내용이 담긴 '청구취지'를 작성한다. 예를 들어 "피고는 원고에게 1억 원 및 이에 대한 연 12%의 법정이자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는 식이다. 여기에 소송비용 역시 피고가 부담하길 원한다면 그 내용을 함께 포함한다.
◆ 반드시 담아야 할 핵심 : 청구취지와 청구원인
하지만 단지 청구만 한다고 끝나지 않는다. 왜 그런 청구를 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청구원인'이 그 뒤를 잇는다. 여기에는 이른바 '요건사실'이라 불리는 핵심 사실들을 적시해야 한다.
첫째, 원고와 피고 간에 소비대차 계약이 체결됐고, 둘째, 해당 계약에 따른 변제기일이 도래했으며, 셋째, 피고가 여전히 금전을 변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세 가지는 단순해 보일 수 있으나, 소송의 성패를 가를 수 있는 핵심 골격이다.
많은 이들이 억울함을 토로하며 소송을 생각하지만, 법정은 감정을 해소하는 공간이 아니다. 논리와 사실, 그리고 법적 요건이 충족되어야 비로소 판결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소장은 말하자면 감정을 논리로 치환하는 문서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대신, 사실과 법리를 들어 상대를 설득하는 도구다.
누구나 법정에 설 수는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소장을 작성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말보다 글이, 감정보다 구조가 우선인 이 문서에서 시작되는 싸움. 그 싸움의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 그것이 결국 승소로 가는 길의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