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 드라마의 파급력은 남다르다. tvN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이하 언슬전)'에 출연한 배우 홍나현은 오랜만에 초등학교 때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그런데 그 친구는 홍나현에게 의외의 이야기를 전했다.
"큰 병과 싸우느라 8년째 병원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의사가 나오는 드라마를 안 봤대요. 그런데 '언슬전'은 정말 재미있다면서, 찾아보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마음이 묘했어요."
최근 서울 마포구 비즈엔터에서 만난 홍나현은 조심스럽게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언슬전'이라는 작품을 통해 누군가의 현실과 맞닿은 삶을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낯설지만 벅찬 경험으로 다가왔다.

지난 18일 종영한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은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스핀오프 드라마다. 종로 율제병원 산부인과 전공의들이 '입덕부정기'를 거치며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 작품에서 홍나현은 후배들에겐 까칠하지만 누구보다 성실한 2년차 전공의 차다혜를 연기했다.
"캐릭터 설명엔 '젊은 꼰대'라고 나오는데, 저는 다혜가 꼰대라고는 생각 안했어요. 꼰대처럼 보이지만 자기 기준이 분명하고, 후배들한테도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이거든요. 오히려 요즘 같은 세상에서 보기 드문 청년이라 더 정이 가더라고요. 하하."
하지만 홍나현은 차다혜와 자신이 거리가 있다고 털어놨다. 촬영 초반, 차다혜의 단호한 말투와 무뚝뚝한 태도가 낯설었다고 전했다.
"실제로는 제가 둥글둥글한 편이에요. 누구를 꾸짖는 것도 어색했고, 그렇게까지 말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처음엔 '다혜는 왜 이렇게 말할까'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었어요."

홍나현은 반복된 대본 분석 속에서 차다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다혜의 내면에 감춰진 불안과 책임감을 발견했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람을 챙기는 따뜻함이 보이기 시작했다.
"엄재일(강유석)을 무심하게 대하지만, 뒤에선 늘 챙기잖아요. 그게 다혜식 정을 주는 방법인 거죠. 저도 그렇게 점점 다혜에게 정이 갔어요."
감정의 방향이 잡히자, 인물과의 간극은 천천히 좁혀졌다. 실제 의료 현장에 있는 자문 교수와 함께한 경험도 많은 도움이 됐다. 그는 초음파 기계를 잡는 각도, 환자에게 다가가는 자세 하나하나에 집중했고, 그럴수록 다혜로 살아가는 시간도 자연스러워졌다.

촬영이 끝난 지 약 1년이 지나고, 차다혜를 연기했을 당시의 감정이 서서히 옅어질 무렵, 홍나현은 '언슬전'을 본 옛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오랜 기간 병원 생활을 했던 친구는 '언슬전'에 등장하는 전공의들의 실수나 간호사들의 표정을 자신도 직접 본 적이 있었다고, 율제병원이 어딘가에 진짜 있을 것만 같다고 했다.
그 말은 단순한 응원이 아니었다. 연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홍나현은 차다혜를 허구의 인물로 여겼다. 하지만 친구의 현실이 겹쳐지며, 차다혜는 더 이상 TV 안에만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친구의 말을 들으니, 내가 연기하는 인물이 누군가에겐 진짜일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연기할 때 더 조심스럽고, 진정성을 담아야겠다고 느꼈어요."
②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