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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변호사 박인준의 통찰] 묻지마 폭행과 정당방위
입력 2025-05-16 12:30    수정 2025-05-21 18:23

▲광화문 변호사 박인준의 통찰(비즈엔터DB)

'광화문 변호사 박인준의 통찰'은 박인준 법률사무소 우영 대표변호사가 풍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법과 사람, 그리고 사회 이슈에 대한 명쾌한 분석을 비즈엔터 독자 여러분과 나누는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지난해 7월 신림역에서 참혹한 묻지마 폭행 사건이 발생해 우리 사회가 충격에 빠진 바 있다. 한 명이 목숨을 잃고 여러 명이 부상당한 사건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무차별적 폭력 행위의 심각성을 일깨웠다.

아무런 이유 없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묻지마 폭행'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앞으로도 이런 사건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더욱 우려스럽다.

◆ 진짜 '묻지마 폭행'과 단순 '쌍방폭행'의 차이

변호사로서 사건을 접하다 보면 종종 의뢰인들이 "묻지마 폭행을 당했다"며 상담을 요청한다. 그러나 실상 대부분은 말다툼이나 사소한 접촉이 원인이 된 쌍방폭행인 경우가 많다. 예컨대 길에서 어깨를 부딪혀 서로 언쟁을 벌이다가 한쪽이 폭력을 행사한 경우, 피해자는 "모르는 사람이 나를 때렸으니 묻지마 폭행 아니냐"고 주장하지만 법적 관점에서는 쌍방폭행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사례에서는 서로의 공격 의사가 언쟁 과정에서 이미 드러났으며, 이는 단순히 모르는 사람과 다툰 것일 뿐, 법률적으로 '묻지마 폭행'이 아니다. 모든 사건은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지만, 사소한 시비가 폭행으로 이어진 경우는 일반적으로 단순 폭행 또는 쌍방폭행으로 분류된다.

◆ 진정한 '묻지마 폭행'의 핵심은 '즉각성'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의 '묻지마 폭행'이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기준은 폭력 행위의 '즉각성'이다. 사전에 아무런 말다툼이나 분쟁 없이 갑자기 타인에게 공격을 가하는 행위다. 피해자는 아무런 예고 없이, 아무런 이유 없이 공격을 받게 된다. 이러한 폭행은 피해자가 예측하거나 대응할 여유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극도로 위험하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루어지는 이런 폭행은 피해자에게 단순한 신체적 피해를 넘어 지속적인 불안과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어떠한 관계나 접점도 없기에, 피해자는 왜 자신이 공격의 대상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 정당방위의 확장 필요성

이런 상황에서는 '정당방위'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정당방위를 매우 엄격하게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현행 실무에서는 그 인정 범위가 좁아, 즉각적이고 위협적인 묻지마 폭행 상황에서 피해자의 대응권리가 제한받고 있다.

신림역 사건처럼 공격이 너무나 급작스럽고 극단적인 경우, 피해자는 정당방위 여부를 숙고할 여유조차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자의 방어 행위에 대해 보다 관대한 법적 해석이 필요하다. 정당방위가 좁게 인정되는 현 실무 관행은 묻지마 폭행 위험에 노출된 시민의 자기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묻지마 폭행은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다. 이에 대한 법적 대응은 더욱 강력하고 명확해야 한다. 정당방위의 인정 범위 또한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방어 행위가 과도한 보복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되지만, 충실한 방어 행위 범위 내에서는 피해자의 자기 보호 행위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법적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안전은 '묻지마 폭행'과 같은 범죄를 엄중히 다스리고 피해자의 정당방위 권리를 제대로 보장할 때 비로소 유지될 수 있다. 법원과 수사기관은 묻지마 폭행의 본질인 '즉각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에 맞는 법 해석과 수사 관행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