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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필의 필람 리뷰] '소주전쟁' 유해진·이제훈, 충돌 끝에 피어난 전쟁 같은 브로맨스
입력 2025-05-30 07:30   

▲영화 '소주전쟁' 스틸(사진제공=쇼박스)

기업 매각, 기업 사냥꾼, 법정 관리 신청…경제 뉴스에서 종종 등장하는 이 말들은 많은 사람에게 생소하거나 거리감이 있는 말이다. 하지만 영화 '소주전쟁'은 낯선 경제 용어를 누구에게나 익숙한 '소주'라는 키워드로 풀어냈다. 그리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30일 개봉한 영화 '소주전쟁'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속 소주 회사에 인생을 건 남자 종록(유해진)과 성과 지상주의 글로벌 투자사 직원 인범(이제훈)이 국민 소주 기업 '국보'의 운명을 놓고 펼치는 고군분투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 '소주전쟁' 스틸(사진제공=쇼박스)

영화는 2003년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소주 기업 진로의 경영권을 가져가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화가 가진 무게감은 영화 전반에 쓰디쓴 현실감을 덧입힌다. 회사를 지킨다는 것이 곧 나를 지키는 일과 같았던 그 시대의 무거운 정서를 섬세하게 불러낸다.

무엇보다 중심인물인 종록과 인범의 대립은 소주 회사 직원과 글로벌 투자사 직원의 갈등을 넘어서 삶의 태도에 대한 충돌로 확장된다. 회사가 곧 내 인생이라 믿는 종록과 회사는 그저 돈을 버는 수단일 뿐이라는 인범의 가치관은 처음부터 끝까지 엇갈린다.

▲영화 '소주전쟁' 스틸(사진제공=쇼박스)

정반대의 가치관을 가진 두 사람이 술잔을 맞부딪힐 때마다 다른 감정들이 피어오르는 것도 흥미롭다. 처음에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동료고, 중반에는 적개심을 불타오르게 하는 적군이고, 결국엔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친구가 된다. 소주잔이 오갈 때마다 감정이 쌓여가고, 브로맨스 이상의 서사를 완성한다.

유해진은 '소주전쟁'을 통해 '믿고 보는 배우'의 저력을 보여준다. 최근 영화 '야당'에서 권력에 중독된 검사를 보여줬던 유해진은 회사의 몰락을 막기 위해 발로 뛰는 재무이사 역을 맡아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특히 '파산을 앞둔 회사보다 더 필사적인 직장인'이라는 설정은 관객에게 강한 몰입을 유도한다.

▲영화 '소주전쟁' 스틸(사진제공=쇼박스)

이제훈은 냉철하고 이성적인 인범 역을 맡아 입체적인 캐릭터를 구현했다. 그의 가치관은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그는 영화의 긴장감을 견인하는 축이다. 돈만을 쫓는 사람인 듯 보이다가도, 소주와 사람 사이에서 변화의 조짐을 보이며 인간적 균열을 드러낸다.

조연진도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소화하며 극의 밀도를 끌어올린다. 손현주는 반성할 줄 모르는 부패한 회장 석진우 역으로 ‘빌런의 정석’을 보여주고, 최영준은 감정 없는 실리주의 변호사 구영모를 연기해 냉정한 현실을 각인시킨다. 바이런 만은 글로벌 자본의 냉혈한 본성을 체화해 한국 영화에 낯선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영화 '소주전쟁' 스틸(사진제공=쇼박스)

'소주전쟁'의 진짜 매력은 주인공들의 신념이 끝내 정답이 되지 않는 데 있다. 누가 옳았는가보다 더 중요한 건 각자의 신념이 끝까지 부딪히는 과정 자체가 만든 여운이다. 결국 끝은 통쾌하지 않고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소주전쟁'은 '캬'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하는 명쾌한 한 잔 대신에 오래 곱씹을 안줏거리를 남긴다.

"난 종록일까, 인범일까. 아니면 그사이 어딘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