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제로는 술은 잘 못해요."
배우 이제훈은 영화 '소주전쟁'(제공/배급: 쇼박스)에서 연기한 인범과는 많이 다른 사람이라고 했다. 영화 속 캐릭터와 달리 이제훈은 '일이 곧 이제훈이고, 이제훈이 곧 일'인 삶을 살고 있단다. 특히 4년 전, 매니지먼트사 컴퍼니온을 설립한 뒤엔 더 열심히 일하는 중이다.
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제훈은 출연작을 선택할 때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한 명의 배우로서 좋은 작품에 출연하는 것과 회사를 운영하는 한 명의 대표로서 다작하는 것 사이의 균형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선택의 기준이 되는 건 이야기의 힘이었다. 영화 '소주전쟁'은 힘 있는 이야기를 가진 작품이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배경으로 한 '소주전쟁'은, 국민 소주 기업 '국보'의 인수합병(M&A)을 둘러싼 치열한 전쟁을 담았다. 이제훈은 극 중 글로벌 사모펀드 '솔퀸'의 직원 인범 역을 맡아, 냉철한 돈의 논리와 흔들리는 도덕적 양심 사이를 오가는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인범은 빌런이 아니다. 그 또한 시대가 만들어낸 구조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으려 했던 인물이다. 진로그룹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소주전쟁'은 그런 인물들의 복잡한 욕망과 선택을 따라간다. 인범과 종록(유해진)은 서로 다른 세대와 가치관을 대변하며 끊임없이 충돌하고, 또 미묘하게 닮아간다.

"인범은 회사보다 자신의 성공이 더 중요한 사람이에요. 겉으론 젠틀하지만,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죠. 그런데 종록(유해진)을 만나면서 조금씩 흔들립니다. 그 과정을 통해 저도 제 아버지가 많이 떠올랐어요."
이제훈은 IMF시절 중학생이었다고 했다. 당시 그의 아버지도 IMF의 풍파를 버티지 못했다. 이제훈 아버지는 이전까지 해오던 사업 대신 새벽마다 일거리를 찾으러 나섰다.
"당시는 그저 우리 집이 힘들다는 것만 알았지, 아버지가 어떤 마음이었을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소주전쟁'을 찍으면서 그 마음을 조금은 알게 됐어요. 인범도 원래 종록과 마주 앉아 술을 나누며 아버지를 떠올리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런데 최종적으로 그 장면이 빠졌더라고요. 관객 입장에선 인범이 단선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장면이 빠져 조금은 허전해요."

극 중 인범이 종록에게 스며들었던 것처럼, 이제훈 역시 유해진에게 스며들었다. 그는 유해진과의 호흡이 큰 자산이 됐다고 말했다. 유해진과 함께했던 장면들을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인범과 종록의 감정선도 쌓여갔다고 설명했다.
"유해진 선배님은 대본을 뛰어넘는 분이에요. 자유롭게 연기를 끌어가면서도 현장을 누구보다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선배님과 함께한 하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함께 연기하다 보면 우리가 정말 그 인물로 존재한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긴 호흡의 장면들도 많았는데, 서로의 리듬을 믿고 따라가다 보니 감정의 밀도가 달라지더라고요. 관객들도 그 진심을 느껴주셨으면 좋겠어요."

'소주전쟁'은 분명 통쾌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그 현실적인 결말이야말로 이제훈이 더 크게 공감한 지점이었다.
"현실에서 정의는 항상 이상적으로만 이뤄지진 않잖아요. 오히려 그 씁쓸함이 더 진실하게 느껴졌어요. 저 역시 인범을 연기하면서도 끝까지 쉽게 답을 낼 수 없었거든요. 관객분들도 이 영화를 보고 각자의 기준으로 질문을 던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