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객석에 앉아 10년이란 시간이 집대성된 무대를 바라보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2015년 초연한 '팬텀'은 한 시대를 마무리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었다.
'팬텀'은 가스통 르루의 고전 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바탕으로, 미국의 작곡가 모리 예스톤과 극작가인 아서 코핏이 새롭게 탄생시킨 뮤지컬 작품이다. 오페라극장을 배경으로 팬텀과 크리스틴 다예의 미스터리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려낸다.

◆ 가면 뒤에 숨겨진 슬픈 초상
얼굴의 흉터로 인해 세상과 단절된 채 오페라하우스 지하에 숨어 사는 천재 음악가 '에릭'은 사람들로부터 '오페라의 유령'이라 불린다.
이날 팬텀 역을 맡은 전동석이 처음 등장하는 순간, 극장 안이 숨을 죽였다. 가면 너머로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객석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었다. 마치 정말 지하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목소리 같았다.
외로운 삶을 살아가던 팬텀은 우연히 '크리스틴'의 노래를 듣게 되고 그녀의 재능에 매료된다. 에릭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그녀의 음악 스승이 되어 몰래 가르치며 크리스틴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지만, 결국 그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며 비극은 시작된다.

◆ 보다 선명해진 무대
'팬텀'의 무대는 여전히 아름답고 정교했다. 지난 시즌들에 비해 무대는 다소 단조로워졌지만, 오페라하우스의 화려함과 지하 세계의 고적함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무대 디자인은 여전히 관객의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영상 연출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시공간을 넘나드는 듯한 환상적인 분위기도 그대로였다.
특수효과 또한 압권이었다. 분노한 팬텀의 감정을 드러내는 듯한 화염과 드라이아이스는 마치 지하 세계에서 올라온 유령을 마주한 듯한 기분을 자아냈다. 전동석이 보여준 신비로운 분위기의 팬텀 연기는 관객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발레 시퀀스가 나올 때는 객석이 조용해졌다. 새하얀 의상을 입은 발레리나들이 팔을 펼치며 무대를 가로지를 때는 관객들에게 '우아함'이란 이런 것이라고 알려주는 듯 했다.

◆ 믿고 보는 캐스트의 완벽한 하모니
송은혜의 크리스틴은 정말 놀라웠다. 깨끗하고 청아한 음색으로 순수함과 여린 겉모습에서 나오는 강인한 용기를 그려냈다. 점점 극이 진행될수록 깊어지는 목소리를 듣는 것은 공연을 즐기는 여러 재미 중 하나였다. 특히 크리스틴과 팬텀의 듀엣은 공연의 백미였다.
극단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카리에르 역의 민영기는 깊이 있는 연기와 안정감을 선보였다. ‘민버지’라는 별명답게, 팬텀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하나하나에 팬텀에게 숨길 수밖에 없었던 그의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리사의 마담 카를로타는 극의 긴장감이 너무 팽팽해질 때마다 절묘하게 웃음을 자아냈다. .

◆ 10주년의 품격, 그랜드 피날레의 전율
커튼콜에서 배우들이 무대 위로 나와 인사할 때, 객석에서는 따뜻한 박수가 이어졌다. 전동석의 뒷모습에서는 최연소 팬텀부터 10주년 팬텀까지, 그가 ‘팬텀’과 함께 걸어온 시간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또한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작품을 사랑해온 관객들의 애정이 박수 속에 담겨 있었다. 무대 위 배우들의 만족스러운 표정과 객석의 뜨거운 호응이 어우러지며, 이 특별한 그랜드 피날레 시즌의 의미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뮤지컬 '팬텀'은 이번 시즌을 끝으로 10년 여정의 대단원을 맞이한다. 2015년 국내 초연 이후 꾸준히 사랑받아온 이 작품의 슬프고도 눈부신 '그랜드 피날레' 시즌은, 역대 최고의 시즌으로 관객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처럼, 재정비를 거쳐 새로워진 모습으로 언젠가 다시 돌아올 '팬텀'을 기대하며, 지금 이 순간의 무대를 더욱 소중히 간직하게 된다.

10주년 기념 '그랜드 피날레' 시즌의 팬텀 역은 박효신, 카이, 전동석이 트리플 캐스팅되었으며, 크리스틴 역은 이지혜, 송은혜, 장혜린이 맡아 각각의 매력으로 무대를 빛낸다.
극장을 나서면서 돌아본 세종문화회관의 불빛이 유독 아름다워 보였다. 10주년 '팬텀'을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팬텀'을 권하고 싶다. 8월 11일까지, 이 특별한 그랜드 피날레를 만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